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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드라마

영화 <스펜서> 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일생과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생활 / 생전 사진들

by Lazy Girl 2021.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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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펜서>로 다시 故다이애나비의 삶과 찰스 왕세자와의 결혼생활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다이애나의 결혼 전과 결혼 생활, 그리고 이혼 후 삶과 죽음까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 (Diana Frances Spencer)

출생 : 1961년 7월 1일, 영국 노퍽 샌드링엄 파크 하우스

사망 : 1997년 8월 31일 (향년 36세),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

배우자 : 웨일스 공 찰스, 영국 왕세자 (1981년 결혼/1996년 이혼)

자녀 : 윌리엄, 해리 영국 왕세손


 

왕세자비 이전

1961년 7월 1일, 영국 노퍽 주 샌드링엄에 위치한 왕실 별장 파크 하우스에서 8대 스펜서 백작 존 스펜서와 프랜시스 백작부인의 1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다이애나의 어린시절은 대체로 불행했다고 합니다. 다이애나의 부모님은 아들 출산, 성격 차이 등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종종 목격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다이애나가 6살 되던 해에 부모님은 별거를 시작했고 처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다가 다시 샌드링엄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살았다고 합니다. 다이애나는 주말마다 형제들과 런던에 있는 어머니를 보러 갔고, 어머니는 자식들과 헤어질 때마다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반면 함께 지내는 아버지는 매일 저택에서 파티를 열며 체면과 명성에만 신경쓰고 자식들에게는 차가웠던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어린시절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인생에 걸쳐 트라우마가 되었고, 다이애나의 부모는 이혼 후에 본인들 일에만 몰두하느라 그녀를 깊게 신경쓰지 않는 바람에 소극적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랐다고 합니다. 이런 성격은 후에 왕세자비가 되었을 때 언론의 과도한 집중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습니다.

 

다이애나는 상류층 자식들이 다니는 명문사립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학창시절에 다이애나는 스포츠를 좋아했으며 발레와 피아노를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 당시 같은반 친구 중에 배우 틸다 스윈튼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돌보고 도와주는 일이 적성에 맞았던 다이애나는 상류층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보모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와전되어 마치 평범한 유치원 보모가 찰스 왕세자와 결혼으로 인생역전을 한 것처럼 잘못 알려지기도 했었습니다. 워낙 공부에 소질이 없었던 다이애나는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집은 부유했지만 고등학교 중퇴 후 런던에 아파트를 얻어 살며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생계형이라기 보다는 성인으로 독립하기 위해 일을 했다고 판단됩니다.)

 

이렇게 성인으로서 독립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후 찰스 왕세자와 만나 초고속 약혼을 하게됩니다.

 

 

찰스 왕세자(1948년 11월 14일~)와의 만남과 결혼


찰스왕세자

이름 :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출생 : 1948년 11월 14일 ~ 현재 72세, 영국 런전 버킹엄 궁전

어머니 : 엘리자베스 2세 여왕 / 아버지 : 에든버러 공작 필립

배우자 : 다이애나 스펜서(1981년 결혼 / 1996년 이혼)

           카밀라 파커 보울스 (2005년 결혼)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의 남동생 앤드루 왕자와 소꿉친구라 아주 어렸을 적 둘은 몇번 본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이애나는 영국의 차기 왕이 될 찰스 왕세자를 조금 관심을 가지고 본 적은 있지만 후에 본인의 남편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 후 다이애나가 만 19세 때 다시 만난 자리에서 찰스는 다이애나에게 호감을 가지게되었고 둘은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시도때도 없이 언론과 파파라치들이 유치원 보모로 일하던 다이애나에게 달라붙었고 쏟아지는 세간의 폭발적 관심 속에서 단 12번의 만남이 있은 후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의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영국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찰스 왕세자가 약혼을 발표하자 많은 영국 국민들이 환호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조기 퇴위하고 찰스 왕세자가 즉위하는데에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론은 둘의 결혼생활이 흔들리면서 왕위 계승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왕위계승 서열 1위인 왕세자의 결혼식인만큼 두 사람의 결혼식은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세기의 결혼식"으로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웨딩드레스에 장식된 수천 개의 진주와 스팽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졌으며 7미터의 긴 트레인으로도 유명했습니다. 당시 성당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릴 때 너무 긴 트레인 때문에 들러리들이 고생했다고 합니다. 이 드레스로 전세계 여성들은 화이트가 아닌 옅은 아이보리색의 풍성한 퍼프 슬리브와 긴 트레인이 있는 웨딩드레스를 로망으로 꼽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

(왼) 윌리엄 왕세손 출산 후 / (오) 해리 왕세손 출산 후

전세계의 흥분 속에 진행된 결혼식 이후 다이애나는 더이상의 큰 관심은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결혼식 이후에도 언론과 파파라치들은 끊임없이 다이애나를 쫓아다니며 그를 괴롭혔습니다. 이로인해 다이애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진에 찍혔던 여성 인물"이 되었으며 마이클 잭슨보다도 더 많은 사진이 찍혔습니다. 이와 같은 대중들의 폭발적 관심은 영국 왕실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어린시절부터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찰스 왕세자도 자신보다 대중들에게 더 관심을 받는 그의 어린 아내로 인해 당황한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남편인 찰스는 다이애나와 결혼하기 전부터 "카밀라 파커 볼스"와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훗날 결국 찰스는 카밀라와 재혼에 성공하는데요, 당시 카밀라 또한 앤드류 파커 볼스와 결혼한 유부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륜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다이애나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단지 왕세자비라는 자리에 앉혀놓을 적당한 인형이 필요했음을 깨닫고 절망에 빠집니다. 사실 다이애나는 결혼 전 찰스에게 정말 자신을 사랑하는지 물었고, 이에 찰스는  " I love you, whatever love means."(당신을 사랑해, 그 의미가 어떻든 간에)라는 애매모호한 답을 했다고 합니다.

 

찰스는 왕위 계승권과 사랑을 모두 쟁취하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질렀던 것인데요, 대중들에게 젊고 아름다운 성공회 신자인 다이애나와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보여주며 왕세자로서 인기를 얻으면서 숨어서는 본인의 사랑 또한 포기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다이애나와 신혼여행 중에도 카밀라가 선물한 커프스를 달고 있었으며 둘의 관계를 정리하라는 다이애나의 요구에 오히려 다이애나를 의심병으로 몰아가며 다이애나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에 자살시도와 거식증, 폭식증으로 다이애나는 점점 심신이 지쳐갔습니다.

 

결국 다이애나는 시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에게 찰스와 카밀라의 불륜을 호소하지만, 다이애나의 간청에도 불구 그들의 불륜을 방관했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시아버지인 필립 마운트배튼 공만이 다이애나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게다가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다이애나를 왕실 사람들은 점점 소외시키며 언론에 다이애나에게 악의적인 기사를 내보낼 것을 지시하는 등 다이애나를 괴롭혔습니다. 이런 가식적인 왕실에 질려버린 다이애나는 자신들의 아들들에게는 감정표현을 솔직히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가르쳤다고 합니다.

 

결국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 보란듯 승마 교관과 맞바람을 피우는가 하면, 왕실 근위병 및 경호원들과도 연애를 하며 염문설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에서는 찰스 왕세자 부부의 불화설이 돌기 시작했고 찰스의 주변인들은 그 원인이 다이애나인 것으로 기사를 냈습니다. 이제 분노한 다이애나는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과 왕실의 비인간적 면모를 폭로, 고발하는 책을 출판하고는 1992년 12월부터 찰스와 별거에 들어갔습니다. 별거 이후 각종 가십과 파파라치와 언론의 폭발적 관심에 다이애나는 여전히 고통받다가 1996년에 길고 긴 결혼 생활 정리와 의전 문제를 마무리 지으며 최종적으로 찰스와 이혼했습니다. 

 

찰스와의 불행한 결혼생활에도 불구 다이애나는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시절을 두 아들들에게는 겪지 않게 하게 위해서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린 왕자와 공주의 양육을 유모에게 맡기는 왕실에서 다이애나는 이례적으로 직접 모유를 먹이며 직접 두 아들을 양육하는 것을 고수했으며 두 아들들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결혼생활을 15년 간 지속했습니다. 다이애나의 따스한 보살핌 아래 성장한 윌리엄과 해리는 미래의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세대로 부각되었습니다.

 

 

이혼 이후 다이애나의 삶과 비극적 죽음

왕세자비 시절부터 자선사업과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다이애나는 이혼 후에 더욱 활발하게 이러한 활동에 나섰습니다. 아프리카 빈민 구호와 적십자 활동 등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특히 대인지뢰 제거운동에 애착을 갖으며 활동했습니다. 이런 다이애나의 사회 활동에 전 세계인들은 감동했고, 그녀의 인기는 영국 왕세자와의 이혼에도 불구 더 높이 치솟았습니다. 그에 비해 영국 왕실은 찰스 왕세자의 불륜, 왕실 사람들의 이중성이 알려지면서 인기가 형편없이 떨어졌습니다.

 

이혼했지만 다이애나는 여전히 수많은 파파라치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가 어떤 남자를 만나는지 다이애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녔고 다이애나는 이를 따돌리기 위해 변장까지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이애나의 데이트 사진값은 천정부지로 높아졌습니다. 1997년 그와 알 파예드라는 남자와의 요트위에의 만남을 찍은 사진이 30억원에 팔렸고 파파라치들 헬리콥터까지 동원하며 집요하게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그러던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파리.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이 제공한 벤츠에 올라탄 다이애나와 알파예드를 파파라치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갔고 벤츠는 파파라치를 피하게 위해 속력을 높였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퐁드랄마 지하차도 기동에 충돌하고 만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운전사와 알파예드는 충돌 순간 즉사했고, 다이애나는 치명상을 입은 채 살아있었습니다. 하지만 파파라치들은 그 순간에도 그를 병원에 이송하기는 거녕 카메라를 들이대며 마구 사진을 찍어댔다고 합니다. 사고 후 20분이 지나서야 시민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다이애나는 결국 사망하게 됩니다.

 

당시 다이애나 죽음두고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함께 있었던 알파예드는 당시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는 바람둥이로 평판이 매우 나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남자와 다이애나가 재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영국왕실은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하면서 다이애나 죽음이 영국왕실과 연관있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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