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 T A R

그레이스 켈리 결혼식 사진 / 결혼 이후부터 사망 전까지의 모습들 / 모나코 왕비의 삶

by Lazy Girl 2021. 12. 23.
728x90
반응형

1950년대 헐리우드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모나코 왕비(공비)가 되어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레이스 켈리.


그레이스 켈리는 우아하고 세련된 외모와 패션 감각으로 1950년대 상징적 세기의 스타 중 한명인데요, 오스카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며 각광받는 배우하다가 모나코 왕국의 왕과 결혼하는 영화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사실 모나코 원수는 왕king이 아니라 공prince라고 합니다.)

그레이스 켈리는 왕비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건 결혼 당시 입었던 드레스인데요. 하이넥의 긴팔 레이스 상의 디자인 드레스는 아직까지도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 웨딩 드레스 스타일로 꼽히고 있으며 그레이스 켈리가 결혼식 미사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또한 아직까지 웨딩촬영에서 참고가 되는 사진입니다.



세기의 결혼식, 레니에 3세와의 러브스토리


그레이스 켈리가 화보 촬영차 모나코에 방문했을 때 모나코의 왕 레이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를 초대합니다. 이후 레이니 3세는 12캐럿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는 등 지속적인 구애를 하고 결국 그레이스 켈리는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하게 됩니다.

1956년 4월 18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무려 1주일이나 되는 일정으로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립니다.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그레이스 켈리의 웨딩드레스는 영화 의상 담당인 헬렌 로즈가 디자인 했다고 합니다.


결혼 이후 모나코 왕비(공비)로서의 삶


그렇게 배우 생활 5년만에 은퇴하고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 두 사람은 1957년 장녀 카롤린, 1958년 아들 알베르 2세, 1965년 차녀 스테파니를 낳았습니다. 차녀 스테파니를 낳기 전에 몇차례에 걸친 유산이 반복되어 스테파니를 더욱더 아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불행했던 결혼생활

세기의 결혼식, 배우보다 더 화려한 왕비의 삶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레이스 켈리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우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우아한 배우의 삶을 살았던 그레이스 켈리에게도 왕실 생활을 너무나도 어렵고 힘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모나코는 프랑스어를 쓰는 국가인데 언어장벽이 그를 더 힘들게 했다고 합니다.

너무 빠른 속도로 결혼까지 한 레니에 3세와는 생활 발식과 가치관이 서로 달랐으며 시어머니와 시누이와도 사이가 안좋았다고 합니다. 레니에 3세는 모나코 내에서 그레이스 켈리가 출연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을 금했다고 할만큼 그레이스 켈리에게 보수적으로 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레이스 켈리는 결국 우울증까지 앓게 됩니다.


자유로웠던 헐리우드에서의 생활을 그리워 하던 중 히치콕 감독이 <마니>라는 작품 출연을 제안했고, 다시 연기활동을 하려 시도했지만 극중 배역이 도벽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모나코 왕실의 품위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모나코의 국민들까지 그레이스 켈리의 영화출연을 반대, 결국 연기활동 컴백이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그레이스 켈리의 이른 죽음

1982년 차녀 스테파니를 조수석에 태우고 직접 운전하던 그레이스 켈리는 갑작스러운 뇌졸증이 발생하여 정신을 잃어 운전하던 차가 산비탈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함께 타고 있었던 스테파니는 가벼운 부상만 당했지만 그레이스 켈리는 치명상을 입어 사고 다음날인 9월 14일 향년 52세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가치관 차이로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의 장례식에서 생중계가 되고 있는 중에도 체통을 다 내려놓고 계속 흐느끼며 울었다고 합니다.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가 죽은 후 20년 후에나 생을 마감했지만 재혼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레이스 켈리와의 우울했던 결혼생활과 별개로 그레이스 켈리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 같아보입니다.



그레이스 켈리 노년의 모습

나이는 들은 모습이지만 여전한 패션감각과 특유한 우아함이 돋보이는 모습입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